롯데시네마 주엽 아르떼관의 작은 스크린
9월 6일 토요일
<자유의 언덕>을 보기 위해 마을버스(900원) 타고 롯데시네마 주엽에 갔다. 웬만해선 이 극장에 오고 싶지 않았다. 여건이 된다면 큰화면 TV 사서 극장동시상영관서비스로 집에서 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어서 메가박스 백석이 재오픈 하기를 바란다.
<자유의 언덕>은 사랑/꿈/시간에 관한 홍상수식 고찰과 실험이 흥미를 주는 영화로 역시 북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다소 뻔한 수로 보여 좀 싱거웠다. 정신 상태가 아주 좋은 상태에서 봤는데도 별로였다. 정은채와 김의성의 발끈 연기와 카세료와 문소리의 맛있는 키스 장면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정유미가 그랬던 것처럼 홍상수 영화에서 정은채를 만나는 일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녀는 좋은 배우였다. [★★★]
영화를 보고 나서 카메라를 사기 위해 양재역에 갔다. 휴일인데 회사 근처 양재를 가니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일명 '라이언 맥긴리 카메라'로 알려진 후 더 구하기 힘들어진 야시카 T4를 거래하러 온 여대생은 미인이었다. 접선장소인 개찰구에서 카메라를 받아 미리 준비해 간 필름을 넣어보고는 봉투에 담은 27만원을 건넸다.(몇 시간 후 사용해 본 야시카 T4는 가방에 늘 넣고 다니던 3만 5천원짜리 자동필카 Canon PRIMA SUPER 115u 보다 가볍고 화각이 넓어 일단 만족스러웠다. 민감한 셔터와 필름 돌아가는 소리는 별로였지만)
<자유의 언덕> 촬영지 투어의 출발점
바로 귀가하기 아까워 광화문 가는 버스를 탔다. 마침 입고나온 복장이 카세료 차림이어서(미화) 곧장 <자유의 언덕> 촬영지 투어에 나섰다. 일명, 카세료 성지순례. 촬영소로 쓰인 북촌/계동 라인은 예전 낙원아파트 살 때 빵과 삼겹살을 사기 위해, 그리고 전셋집을 알아 볼 겸 종종 들렀던 곳이라 이번 투어는 쉽게 끝낼 수 있었다.
영화 장면
실제 장소
우선, 낙원시장 앞에서 01번 버스를 타서 빨래터 정류장에서 내렸다. 모리(카세료)가 여자친구(서영화)와의 추억을 떠올렸던 창덕궁 빨래터에서 나는 모리대신 꼬마들을 만났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그런지 맑고 시원했다. 이런 동네 깊은 곳까지 찾아 낭만적인 장소에서 데이트를 한 커플이라니, 멋지다. 나도 꼭 따라해야지.
빨래터에서 이어진 언덕을 올라가 보니 기슭에 세워진 계단 구조의 멋진 한옥이 보였다. 상궁이 살던 집터(라고 전해진 곳)에 1910년대에 지어진 백홍범 가옥인데, 이런 숨어있는 집은 정말 매력있다.
근처에는 우리나라의 첫 번 째 서양화가로 알려진 고희동의 한옥이 있었다. 별도의 화실에 이젤이 세워져 있는 것이 특별해 보인 멋진 한옥이었다.
높은 언덕을 올라 <자유의 언덕> 카세료 성지순례를 이어갔다. 언덕 정상에는 모리가 다른 숙박지를 알아보기 위해 들른 북촌마루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외국인이라면 이런 곳에서 한옥 체험도 하며 한 번 묵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언덕 아래엔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고등학교가 있었다.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져 버린 이곳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재학생을 위한 학용품 대신 한류 연예인 물품을 팔고 있어 씁쓸했다.
영화 장면
실제 장소
학교 앞에서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현대화된 카페들이 들어서 있었고 신축, 리모델딩 중인 건물도 있었다. 목욕탕, 이발소, 개성 있는 상점처럼 원래 있던 그대로의 느낌이 유지되는 것이 좋은데 규모를 자랑하는 떡볶이 전문점과 같은 한류관광객을 노린 가게와 우후죽순으로 카페만 들어서는 것 같아 많이 섭섭했다.
실제 장소
가장 궁금했던 장소였던 모리가 한국에서 머무르는 숙소 휴안 게스트하우스는 찾기 쉬운 골목길에 위치해 있었다. 들어가 볼 수 있었고 사진 촬영도 하게 해주었다. 2인실이 평일 7만원(조식 제공)이라니 여자친구가 생기면 한 번 쯤 추억을 만들고 싶다.
휴안 게스트 하우스 골목길에는 모리와 정은채가 스쳐가는 액세서리 상점도 있었다.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영화를 다시 보며 동선 중심으로 영화를 다시 뜯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영화 장면
실제 장소
익숙한 길을 따라 엔딩 장면인 전광수 커피(<우리 선희>에도 나온) 앞 도로를 넘어갔다. 그 길로 모리와 영선(문소리)이 와인을 마신 곳인 뽈뽀프레스 앞에 섰다. 낯익은 것이 여긴 옛날에 내가 몰래 데이트 했던 곳이었다. 이름만 바뀐 듯하다.
<자유의 언덕> 카세료 성지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지유가오카 핫초메(영선이 운영하는 카페)를 만나러 좁은길을 걷던 중 우연히(마치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계동 카페공드리 주인(대학지인)인 범석씨를 만났다. 무분별한 상업화로 월세가 오른 그 역시 북촌의 개성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뭐, 홍상수 감독의 책임도 있으니 다음 작품부터는 북촌을 떠나야 좋은 게 아닌가 싶다. 다음 영화는 경리단길이 아닌 제가 사는 동네 일산 어떤가요?
<자유의 언덕> 북촌지도(홍보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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