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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영화일기

[그 해 여름(Once in a Summer)] 69년을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

by 22세기소녀 2021. 12. 20.

2006.11.27

브로드웨이시네마에서 일반시사로 <그 해 여름>을 보다.

 

 

80년대를 배경으로 십대의 청춘과 사랑을 그렸던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이 69년을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 <그 해 여름>으로, 4년 만에 생존신고를 했다. 감독은 복고 색채를 통해 풋풋하고 애틋한 감성을 자극하는 재주를 다시 한 번 보여주며 은근한 유머도 빼놓지 않는다. 청춘은 어두운 사회적 공기를 마시고 있으며 여전히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한 것이 있다면 욕심이다. 두려울 것 없어 보였던 감독의 연출력은 조심스러워졌다.

 

 

영화는 클리셰들로 무성하다. 대학생이 농활을 가서 그곳 처녀와 사랑을 나누고 영원을 약속하지만 이루지 못한다는 스토리부터 그렇다. 종종 변수를 심어 놓긴 하지만 상투성의 테두리 안에 있다. 그렇지만 뻔한 로맨스라도 잘만 만든다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해 여름>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울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목적은 이뤄낸 듯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시사회장에서 여성 관객은 눈물 또 눈물)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느냐? 그건 아니다. 이 영화에는 곽재용이 <클래식>에서 했던 것과 같은 진심과 자기 작품에 대한 깊이가 없다. 충무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감독은 자기 얘기를 별로 하고 있지 않다. 만일 조근식 감독에게 보다 연출의 자유가 허락됐다면 69년을 단순히 소재로써만 사용하지 않고 사회적 맥락(가령 삼선개헌과 연좌제, 달착륙 등) 속에서 연애하는 청춘을 그렸을 것이다.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이 그 아쉬움을 달래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쉬운 점은 편집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의 묘를 살리지 못해 유해진(PD)과 이세은(작가)의 존재가 과연 필요했던 영화인가 싶어진다. 후반 만어사 돌탑 장면의 생뚱맞음도 마찬가지다. 과연 관객이 장면의 의도를 제대로 받아들여 정서적 충격을 받았을까?

 

후반부는 이처럼 편집의 디테일이 아쉽고 뭔가 이야기를 하다만 미진함이 남는다. 잘 쌓아왔던 연애의 솔직한 정감들이 어색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훗날 <그 해 여름>을 추억한다면, 이병헌과 수애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두 배우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1993KBS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주연이었던 이병헌은 이번 <그 해 여름>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80년대 정치적 격변기 속 사랑을 그렸던 '살아남은 자의 슬픔'<그 해 여름>처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형식이었다. 다소 노인 분장이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거슬리고 목소리 톤도 어색하지만 이병헌이 보여준 청춘시절 누군가에게 푹 빠지게 되는 사랑의 모습은 모두의 가슴 속에 있던 것이다. 정재영에게도 어울리고 이병헌에게도 어울리는 수애의 연기는 멜로의 여왕이라 부를만하다. 대사가 있어도, 대사를 하지 않아도 그녀는 마음을 적신다. 영화 중반, 이병헌과 수애가 음악을 들으며 서로를 훔쳐보며 사랑에 빠져드는 장면은 <비포 선 라이즈>에서 에단 호크와 쥴리 델피가 음악감상실에서 보여준 것과 비견할만한 명장면이다. 한편, 취조원으로 나오는 김중기 배역은 아이러니한 쾌감을 준다. 그 자신이 학생시절 운동권 출신으로서 옥살이도 했던 인물인데 취조원으로 나오니 말이다. 어떤 의도였든 경험에서 우러나왔을 법한 생생한 연기가 볼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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