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8
일요일, 기분 전환 겸 성신여대 미술대학 졸업전시회에 다녀왔다. 올해 아시아프를 비롯해 여러 청년작가, 대학생들의 작품을 봤지만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너무 기성의 냄새가 나거나 습작 수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발길을 붙드는 작품을 만났다. 자칫, 그 작품을 지나칠 뻔했다. 조그맣게 '신지현'이 창작했음을 알린 그 작품은 대학 설립자로 보이는 동상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건물을 받치는 기둥(등록금으로 올려졌을)인 양 위치해 있었다. 벽돌 하나하나 올려 쌓은 그 설치물은 무언가 시위처럼 보이기도 해 작은 웃음이 났다.
닿고 쌓인다, 신지현, 2012
신지현의 작품이 일차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제작비 문제였다. 흔히 졸업전시회라 하면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이 작품은 값싼 벽돌을 올렸다.(시멘트벽돌 장당 단가가 백 원이 안 되니까 벽돌 값으로 2만 원 정도 썼을 것이다) 이렇게 돈을 들이지 않고도 성취를 보여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에서 감동이 있었다.
이 작품은 입체로써 사방에서 관람이 가능케 했고(보통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회화적인 맛도 있다. 옛 벽화와 같은 그림에는 마티스의 '댄스'를 연상시키는 인물(여성)들이 역동적으로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갇힌 채 머리만 드러낸 다른 조형 여성들은 박제되거나 곧 해체될 것 같은 불안함을 준다. 그 두상은 입을 다문 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마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대학을 다녔으나 사회에 나갈 때가 된 현실은 다르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닿고 쌓인다, 신지현, 2012
이 작품은 발굴적 속성이 과거를 보여준다. 전시의 행위는 현재를 나타내고, 작품의 메시지가 미래를 열어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우러져 있는 이 작품은 불안과 염원을 동시에 품고 있다. 마치 지금 세대의 청년, 우리의 사회를 닮았다.
이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해체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집의 장식적인 기능이 되기를 거부하고 이걸로 끝이라는 걸 택했다. 작가의 길로 한 발짝 더 내디딜 청년작가로서 좋은 생각이다.
닿고 쌓인다, 신지현, 2012
꽃을 보러 온 건지 선물을 보러 온 건지 분간이 어렵기 마련인 졸업전시회에서 소박하지만 힘이 느껴진 작품을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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