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 밥과 아버지를 추억함
이종열
식구들이 찬밥을 끓여 저녁을 먹고 있었다. 조각난 창문엔 살빠진 겨울달이 걸리고 아랫목 이불 속엔 아버지 밥이 숨겨져 있다. 오래 앓은 감기로 누워 있는 이불 속 나는 발가락으로 아버지 밥의 온기를 짜릿하게 느꼈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엄지발가락부터 차례로 찍어 보고 새끼발가락이 닿을 즈음 비틀 아버지 냄새가 났다.
찬바람과 함께 아버지 향수 내가 역하게 몰려와 문지방서 양말을 깁던 어머니는 지구의 자전에도 휘청거리시는 아버지를 부추기셨다. 이불속 내가 기어이 밥뚜껑을 여는데 성공할 즈음 향수 내만 풍기면 천하장사가 되는 아버지가 신문지 같은 어머니를 구겼다. 순간 어머니가 힘없이 고꾸라지더니 공중엔 밥눈이 나리고 방바닥엔 동치미 국물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아버지 밥뚜껑을 덮고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겁먹은 막내누이가 구석에서 쪼그리고 있을 즈음 이내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나에게로 스러져 잠들고 팔 무게를 빗겨 나온 나는 돌연 솟구치는 식욕에 구르는 밥알을 주워 먹고 있었다.
☞ (만들기: 1995.11.30 → 다시 만들기: 19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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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의: 내 유년의 단편을 오정희의 <유년의 뜰>에 나오는 주인공의 정서와 부합해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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