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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일기

[김민희 개인전] 고스트 비키니(Ghost bikini)

by 22세기소녀 2020. 2. 3.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전시 종료가 임박한 두 개의 전시를 보고 왔다. 원래 이*하 작가(이후 M)와 지난 주 보기로 했던 전시인데 M이 감기에 걸려 연기했었고 오늘 긴급 투어가 성사되었다.

첫 목적지인 아웃사이트(out_sight,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35가길 12)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수년전 연극에 빠졌던 일이 있어 혜화동 구석구석의 지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희 개인전 ‘고스트 비키니(Ghost bikini)’(2020.01.09-02.02)는 M이 소개해줬을 때부터 무척이나 끌렸던 전시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실로 예측했던 만화애니메이션과 요코나미 오사무(Osamu Yokonami)의 사진을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펼쳐져 나를 사로잡았고 단숨에 팬이 되고 말았다.

유령성의 요코나미 오사무 사진들(위, 아래)

<신세기 에반게리온>(안노 히데아키, 1995)의 아스카와 레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다룬 <퍼펙트 블루>(곤 사토시, 1998), 살해당한 귀신의 증식을 다룬 이토 준지의 <토미에>(1983, 시공사 1999) 등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일본의 대중문화가 연상되었다. 특히 마치 유령 같기도 한 소녀 무리가 숲과 바다를 돌아다니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사진이 특징인 요코나미 오사무를 연상시킨 비키니 그림들은 정말 매혹적이다. 김민희 작가는 이러한 대중문화적 요소를 끌어오면서도 식상하지 않고 독보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이번 전시작 다 마음에 들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하이? 빠이!>가 정말 좋다. ‘고스트 비키니’의 포스터로도 사용된 이 그림은 피를 보여주는 대신 새빨간 비키니를 입은 물귀신이 대낮에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며 사라져가 더욱 홀리게 만든다. 나에게 보인 그 여자귀신은 미소는 보여주었지만 끝끝내 발목은 보여주지 않았다.

 
<퍼펙트 블루>
<토미에>(1983, 시공사 1999)

사실 귀신은 어디에든 있다. 최근 영화에서는 이러한 현실의 유령(성)과 일상적인 공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좀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는데 그림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나는 김민희의 이번 전시가 매우 신선하다.

개구리색인 녹색 눈물을 흘리는 <개구리요정>과 작품 배치의 묘가 탁월한 <방콕에서>와 <무덤에서 일어난>도 매우 끌리는 작품이었다. 뭔가 다 사연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작품집을 내준다면 꼭 사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이토 준지 <토미에>
<개구리요정> 트리밍

아웃사이트는 차고 공간의 일부를 활용한 갤러리로 보였다. 이 갤러리는 아무리 조심히 열어도 요란한 소리를 내고마는 철문을 열고 반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전시를 보는 내내 주차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는데(M은 파이프에서 물 지나가는 소리도 들었다고) 이는 '고스트 비키니'가 담고 있는 유령성과도 뭔가 관계를 맺고 있는듯하여 오싹한 관람이 되었다. 설마 의도한 것인가?

재치 있고 위트 있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작가를 만나 아무런 대화나 나누고 싶어졌다. 왠지 작가가 그림과 닮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

 

*M이 김민희 작가의 <오키나와 판타지>를 소개해 주었다. 도록이 있다면 구하고 싶다.

(다음 전시 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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